“저희 어머니도,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늘 말씀하셨어요. 여자가 일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며 승진을 하려면 ‘명예 남성’이 되어야 하는 세계라고. 일을 잘하는 남자들의 세 배쯤은 노력해야, 그 무리에서 가장 하찮은 남자와 비슷한 정도로 일을 잘하는 것으로 봐 주었다고요.” (P.245)
‘감겨진 눈 아래에’는 총 7편의 단편으로 과거부터 미래까지 다양한 상황 속 여성 혐오와 가부장제를 담은 소설들로 구성되어있다.
제물로 바쳐진 여자, 새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모녀, 길을 가던 여성을 폭행한 남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의 삶을 망가뜨린 아버지, 폭행을 일삼던 남편을 살인하여 사형을 선고받은 부인 그리고 시녀 이야기의 한국판인 감겨진 눈 아래에로 이루어진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은 소설이라지만 소름 끼칠 정도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이었다.
모든 단편이 재미있고 인상 깊었지만 개인적으로 황금 비파, 폐선로의 명숙 씨, 감겨진 눈 아래에라는 단편들이 가장 좋았다.
황금 비파에서 비파를 부는 여자가 제물로 호수에 버려진다. 호수의 왕을 위해 비파를 연주하던 여자는 제물로 바쳐진 혹은 버려진 여자들을 자신의 시녀로 삼아서 괴롭히던 왕을 죽인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과 뭍으로 돌아가지만 도리어 괴물 취급을 받고 다시 물속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는다. 그녀들은 울면서 물속으로 돌아간다. 괴물을 죽인 남자는 영웅으로 대접받지만 괴물을 죽인 여자는 괴물로 취급받는다.(p43)라는 문장처럼 괴물을 죽이고 돌아왔지만 오히려 괴물 취급을 받는다. 내용은 SF 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현실의 삶과 너무 닮아서 눈물이 났다. 누가 그 여자들을 괴물로 만들었는가?
폐선로의 명숙 씨는 강이라는 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강이의 아버지는 의무는 다했지만 좋은 아버지도 남편도 아니었다. 그런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러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가 평생을 지켜온 비밀을 알게 된다. 이 비밀은 가부장제와 결혼의 폭력성을 잘 보여준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맘대로 휘두르고 심지어 집 밖에 나가는 것도 간섭하며 통금 시간은 8시인 결혼 생활과 아버지가 숨겼고 어머니는 되찾길 원하는 비밀의 열쇠를 알게 된 딸은 그 사실을 은폐한다. 결혼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명숙 씨의 삶과 어머니들의 삶이 떠올랐다.
감겨진 눈 아래에는 시녀 이야기의 한국판이라고 느꼈다. 국가가 여성의 신체와 출산을 통제하는 사회의 설정과 더불어 모든 여성은 국방의 의무를 갖는다. 고작 140페이지짜리 단편이었는데 다 읽는 순간까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차 책장을 넘기기 버거웠다. 그럼에도 소설의 끝은 희망이 있다는 암시를 준다.
한국은 성 평등이 아직까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제야 인식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많은 충돌이 생기고 논점을 흐리는 사람도 상황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서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성별에 관계없이 많은 독자들이 읽기를 바란다.
*황금가지 서평단을 통해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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